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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시인의 '시를 걷는 오늘' 2
김성희 시인의 '시를 걷는 오늘' 2
  • 김성희 기자
  • 승인 2018.01.19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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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힘, 이월출 시인

그늘의 힘

이월춘

세상 그 무엇일지라도
빛 바래지 않으려면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
관목, 오동나무, 서까래, 종이까지도
심지어 소리도 그늘이 있어야 맛이 난다

심금을 찢는 대금 소리 맛보며
벗들의 시집을 읽는다
시의 순교자들
그늘의 힘을 믿는다

가슴 속에 절 한 채 넣고 다녀야지
밤새 짓이긴 마음이 보개산 칡즙 같다

이월춘 시집 『 그늘의 힘 』[시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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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힘' 이라니, 이것은 낭만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꽃 한 송이 제대로 피울 수 없는 그늘에서 물리적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힘과 힘의 충돌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면 그늘이라는 세계가 필요하다.
그늘은 빛이 사물을 통과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일종의 좌절이다. 우리는 깊은 좌절을 겪은 후 희망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빛 바래지 않으려면 그늘에서 말려야 하는" 사물들은 빛과의 정면 충돌을 피해서 결국은 빛을 이기는 힘을 얻는다. 이것은 아이러니의 구조, 홑겹이 아닌 두 겹의 전략이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삶의 진리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통해서 세계의 진실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눈물이나 슬픔은 삶의 저변에서 나약한 포지션이다.
그러나 나약함 속에 강함이 내재되어 있고 겨울 속에 꽃눈이 감춰져 있듯이 삶에 내재된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오동나무에서 가야금이, 닥나무에서 종이가 만들어지듯이, 그늘에 오래 머문 것만이 존재의 '참'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관목, 서까래, 오동나무, 종이,
심지어 소리도 그늘이 있어야 맛이 난다." 소리의 맛을 느끼는 시인들도 시적 대상들을 그늘에서 오래 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를 읽는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그늘이 한창이다. 웅숭 깊은 그늘이 그 품을 넓혀 세상을 보듬는 겨울이다. 그늘의 힘으로 좀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성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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