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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오늘>12 정경미의 '그 옛날 MP 다리'
<시가있는오늘>12 정경미의 '그 옛날 MP 다리'
  • 옥명숙 기자
  • 승인 2018.04.19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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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MP 다리
-정경미


잿빛 난간으로
황색 견장 두른 헌병은 보이지 않고
강은 쓰린 물살로 흐느낀다
은어 떼는 어망 속에서
자갈 머금은 서러움 토해내면
죽어가는 매립지에
숨죽인 어둠이 흐르고
붉은 깃발은 포구 허리에 걸려
혁명을 세우지 못하고 쓰러진다
자유를 퍼 올리는
떠돌이 살별 속에서
깊은 자정이 비지땀 흘리며
포로들의 꿈을 깁는 동안
아득한 뚝섬에는
도드 장군의 눈빛이
이른 새벽을 토막토막 잘라낸다
멈춰버린 그믐달이
시린 하늘에 박힌 못들을 뽑을 때
별은 잠든 교각 위에서 부서진다


정 경미 시집 < 거제도 시편 > 중에서

 

* 감상


‘자연의 계절 변화 또한 잘 우는 것을 택하여 그것을 빌려 운다. 새는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 바람은 겨울을 운다.’ 당나라 때 문인 한유의 문장입니다. 한유는 ‘사람 또한 자연과 같아서 잘 우는 자들의 가슴을 빌어 그로 하여금 울게 한다.’ 하였습니다.

‘시를 짓고 노래하는 시인 또한 그러한 자들이라 하였습니다.’그렇다면 정 경미 시인이 대신 울어주는 울음 또한 잘 들어봐야겠습니다. 시인은 어린 시절 ‘전쟁놀이’를 하며 기차보다 더 빠른 총소리를 흉내 내며 뛰어놀았던 고향의 한 작은 ‘다리’를 가리킵니다. 아직도 아픔과 불행의 그늘을 드리운 이 땅에 대해 시인은 저항의 갈증에 목이 타나봅니다. 문명이 날라준 매립지의 모독을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삐걱거리며 낯설고 딱딱할 뿐입니다.

시인이 읽어내는 쌓인 ‘다리’이야기에 마음 쓰린 통증이 찾아들기도 합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절망하는 이 성복 시인의 시 ‘그날’의 시구처럼 아픔으로 곪아터진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동안, 우리 정직해지자고 합니다. 그리하여 시 한 편이 건네는 은유가 예민하게 읽힙니다.

도대체 온전한 인간은 어디에 있나 하고 묻는 것도 같습니다. 시인노래한 불행했던 고향의 절규를 대신 울어주기로 한 장소인 ‘그 옛날 MP 다리’는 1917년 일제강점기에 가설했고 다리의 본래 이름은 ‘연사교’입니다. 거제시 연초면 연사리에 소재한 이 다리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거제도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한 곳입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곳의 다리 하나가 6.25 한국전쟁 중 소개민과 포로를 분리시킨 경계가 되었으며, 제2의 38선으로 불리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1952년 5월 7일 ‘도드’ 준장이 친공 포로에게 납치되었을 때 이 사건은 세계를 경악하게 하였습니다. 포로들은 온갖 무리한 요구를 들이대며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등 전쟁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 다리위에 소개된 주민의 출입을 통제하는 유엔군 헌병검문소가 설치되었으며 일명 MP다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철망 멀리서 포로가 된 자식을 보러 오는 부모에게, 농지를 두고 온 소개민에게 MP다리는 가슴조이는 건널목이었던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이가 아픔을 읽어내는 방식이 다르듯 시인은 이 땅이 당했던 수모와 통증을 시대와 역사적 시선으로 읽어내고 있습니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엄청난 희생을 불러왔지만, 그럼에도 절망을 딛고 일어서라 외칩니다. 사상과 이념의 대립은 산업혁명처럼 승리의 깃발을 세우지는 못하였지만, 삶을 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인은 다시 ‘자유를 퍼 올리는’ 비지땀을 흘려야한다고 역설합니다.


 
옥 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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